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랑호 납북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경과 및 승객 송환 == 사건 발생 직후 [[대한민국 국회]]는 2월 22일 본회의에서 민주당 소속 [[정일형]] 의원 주도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를 행하고 UN군에 참가한 16개국에 대해 협력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받은 UN군은 2월 24일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가 승객과 승무원, 기체의 조속한 송환을 북한에 요구하였고 국제 적십자사를 통해서도 압력을 가했다. 자국민이 납치된 주한 [[미국]]/[[독일]]대사관도 함께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지만 여의치 않았다가 사건 발생 18일만인 3월 6일 납치범을 제외한 승객과 승무원 26명을 송환하기로 합의하였고 당일 오후 7시 승객과 승무원 26명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으나 창랑호 기체는 끝내 반환받지 못했다. 한편 대한민국 [[경찰]]은 같은달 2월 20일 북한 [[간첩]] 기덕영의 조종을 받은 [[공작원]] 김택선/길선 형제와 김순기, 최관호, 김형 등 5명(월북 동행자 김애희와 김미숙(본명 김신자)을 포함 총 7명)이 납치범이라고 발표하었으며 25일에는 기덕영 등 3명을 사건의 공작과 배후 혐의로 체포하였다. 이 3명은 재판에 회부되는데 이 중 기덕영만 간첩 및 강도상해죄 등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고 다른 2명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는 [[납북]] 사건의 특성상 범행 당사자가 모두 [[월북]]해 버렸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 전말보다 정황과 방증조사에 의존한 추측성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빚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